너와 헤어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 앨범의 너와 관련된 사진을 -그와 관련된, 모든 SNS상의 태그 및 게시물 또한 삭제하는것을 포함하여- 모두 정리하는 거였다.
마치 몇 년간 찍은 동영상을 역재생 하듯이 사진을 지우기 시작했다.
사진을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동안 너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다.
너에게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은 후,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만이 내게 남아있었으니까.
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내 마음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.
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, 너와 관련된 사진속의 내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에.
사진을 지워갈수록 나는 마치 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역재생 하는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있는 것 같았다.
이 때의 나는 이렇게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구나.
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때서야 너와 보낸 시간이 서글퍼지기 시작했다.
( 진작에 멈췄더라면, 너에게서 희망을 보지 않았더라면 -
나는 지금처럼 시들어 고꾸라지기 전에 아름다운 상태로 너와 이별할 수 있었을까. )
너의 이별에는 몇 년이라는 함께 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상대방에 대한 슬픔이 존재하지 않았다.
날려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, 그리고 투자한 것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결과물 - 그에 대한 실패감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.
사진을 전부 지우고 난 후, 내 머리속에 네가 잘 쓰던 문체 하나가 떠올랐다.
'너로 인해서' 그리고 '나로 인해서' 네가 나에게 헤어지자 할 때, 그 때에도 썼었던 말.
나로 인해서 너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며 고백했고,
나로 인해서 너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이별했다.
네가 마지막 순간에 말했던 것 처럼 나에게는 너로 인해 받은 상처들이 존재한다.
그 누구도 치유해 줄 수 없어 내 스스로 치유해야만 하는 그런 상처들이 말이다.
이 상처가 주는 허무함에 굴복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.
하지만 나는 너로 인해서 내 모든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랑하리라.
너와 관련된 모든것이 내게 먼지 한가닥 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하도록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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